가격은 돈의 양에 비례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금이 기본적인 화폐로 유통되는 경제에 적용해봅시다. 가령 처음에는 ‘귤1개=금1그램’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다가 기후 등의 문제로 귤 가격이 올랐다고 합시다. 귤 1개의 가격이 금 2g, 즉 금으로 표시되는 귤의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반대로 새로운 금광이 발견되어 금의 채굴량이 증가해도 귤이 가격은 다시 변화한다. 금의 생산 증가로 금의 가치가 하락하면 귤1개를 금 2g과 교환할 것 이다. 또한 다른 변화가 없을 때 재화의 가격이 ‘금 00g’으로 표시되는 세계에서 금의 생산 증가는 굴 뿐 아니라 모든 재화의 평균 가격을 올릴 것이다.

이번에는 금화나 은화 등의 금속이 돈으로도 사용되지만 금 자체가 돈의 단위는 아닌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앞서들었던 예처럼 귤1개가 금속으로서의 금 1g과 교환된다고 합시다. 동시에 이 경제에서는 화페 1냥에 금 1g이포함되어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귤 1개의 가격은 1냥이 됩니다. 그런데 악의적으로 화폐를 주조함으로써 1냥의 금 함유량이 0.5g으로 변했다면, 귤의 가격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금속으로서의 금과 귤의 교환 비율에 변화가 없다면 ‘귤1개=금1g=화폐2냥’이 성립되므로 귤의 가격은 2배로 올라갑니다. 화폐로서 사용되는 금이 일정하다면, 돈의 양은 2배가 되고 귤 가격도 2배가 된 것입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가격은 돈의 양에 비례한다.”는 가장 단순한 화폐수량설의 주요 명제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폐와 금은의 자유 교환을 의무화하는 태환지폐제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어느날을 기점으로 1000원 지폐를 1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는 단위 호칭의 변경, 즉 디노미네이션에따른 영향과도 비슷합니다.

오늘날 이 같은 원시적 화폐설이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화폐수량설이 현대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현대경제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어빙피셔가 “화폐수량설을 통계학적으로 검증하려고 했던 대부분의 저자는

(중략)

….

화폐수량설을 반박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활기를 얻었다.” 라고 했던 말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화폐경제학 연구 동향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학은 경험과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적인 화폐수량설 역시 실증적 근거를 무시한 채 등장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금은의 양과 화폐 주조의 변화가 가격을 변동시킨 예는 역사상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 디노미네이션
(Denomination) : 통화단위의 호칭의 절하()를 뜻합니다. 이 단어의 일반적인 뜻은 ‘명칭’을 나타내는데, 경제에서는 통화단위의 명칭 절하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 일 같은 것으로, 변경 후의 호칭의 자릿수는 변경 전보다 적습니다. 디노미네이션은 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금액의 표시가 방대하여지고, 계산·기장·지불 등이 매우 불편해졌을 경우, 이 불편을 제거하기 위하여 행해집니다. 한국에서는 1953년에 100원을 1환으로, 1962년에 10환을 1원으로 변경했었습니다.


+ Recent posts